김대식 교수는 서점에 오는 것을 매우 좋아하며, 광화문 교보문고 근처에 일이 있을 때 30분 정도 시간을 내어 서점을 둘러보고 책을 구매하는 것을 즐긴다. 서점 특유의 책 향기를 좋아하며,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읽은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김대식 교수는 책을 다시 읽는 기준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인생에 대한 안내서 없이 시작하는 여행이 인생이다.
더글라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김대식 교수가 고등학생 때 처음 접한 책으로, 유럽에서는 클래식으로 여겨진다. 원래 세 권으로 나뉘어 있었던 책이 한국에서는 벽돌책으로 출간되었다. 라디오 작가였던 더글라스 애덤스가 라디오 쇼로 시작해 인기를 얻어 책과 BBC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지구가 우주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멸망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주인들이 20년 전부터 공지했음에도 지구인들은 이 사실을 몰랐고, 우주인들은 지구를 파괴한다. 지구인 중 한 명이 외계인 친구 덕분에 살아남아 외계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며 은하수를 여행하게 된다. 이 책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역할을 한다.
주인공은 우주를 만들고 생명체를 만든 존재에게 "당신이 신이냐"고 묻지만, 그는 자신은 신이 아니라고 답하며 고도로 발전한 문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은 모든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했지만 삶의 의미를 몰라 우주에서 가장 큰 인공지능 컴퓨터 '디프 소트(Deep Thought)'를 만들어 질문한다. 몇백만 년 후, 컴퓨터는 우주의 비밀과 삶의 의미에 대한 답으로 **"42"**라는 숫자를 제시한다. 그러나 질문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질문을 찾는 컴퓨터를 디자인하는데 그것이 바로 지구이다.
소설 속에서 지구는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찾는 기계이며, 지구에서의 모든 삶은 그 질문을 찾는 과정이다. 답은 이미 "42"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질문을 찾기 1초 전에 지구가 우주 고속도로 건설 때문에 파괴된다.
이 책은 삶을 탐구하는 여정이 될 수도 있고, 우주를 여행하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다양한 행성을 다니며 모험을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인생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찾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김대식 교수는 책 제목 중 **'안내서'**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는다. 인간은 인생에 대한 안내서 없이 세상에 태어나지만, 여행을 갈 때처럼 인생에도 안내서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42라는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지구에게 부여된 의미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20세기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지만, 읽기 매우 어려운 책이다. 김대식 교수는 고등학생 때 독일어로 처음 읽었지만 이해하지 못했고, 영어 원서로도 이해하지 못해 몇십 번을 읽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율리시스》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오디세이아》가 오디세우스의 20년간의 여정을 다룬다면, 《율리시스》는 더블린에 사는 평범한 남성 레오폴드 블룸이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동안 경험하는 여정을 묘사한다.
문학 역사상 가장 긴 하루를 다루지만, 레오폴드 블룸이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 책은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인간의 생각을 표현한 작품으로, 레오폴드 블룸의 모든 잡생각을 글로 표현한다. 생각은 동시에 여러 가지가 일어날 수 있지만, 글은 순서대로 표현해야 하므로 이해하기 어렵다. 문장과 문장이 연결되지 않는 이유는 다른 생각이기 때문이다.
《율리시스》는 아일랜드 사회에서 국민 책으로 여겨지며, 더블린에서는 블룸스데이라는 축제가 열린다. 블룸스데이에는 사람들이 레오폴드 블룸이 걸어 다녔던 경로를 따라 걷는 행사를 한다.
인간의 뇌는 100조 개의 신경 세포로 연결된 거대 언어 모델과 같다. 뇌에서는 동시에 여러 일이 벌어지며, 인간은 수백만 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 그중 가장 지배적인 자아가 기억하고 표현하는 자아이다.
언어의 해상도는 생각의 해상도보다 훨씬 낮다. 우리는 머릿속에 어마어마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의 개수가 부족하다. 따라서 언어는 생각과 실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지만, 해상도가 좋지 않아 사회에서 많은 오해가 발생한다.
같은 단어를 쓰는데 다른 걸 생각하는 것이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은 김대식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인 문학과 예술, 특히 예술의 중요성과 역할을 가장 잘 표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인간이 그림을 그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세상이 아름답지 않은데 그림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가, 비도덕적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한다.
기원후 10세기, 11세기 이슬람 중동은 기독교 유럽보다 훨씬 발달했으며, 초기 이슬람은 계몽주의적이고 포용적인 종교였다. 바그다드에는 다양한 종교의 학자들이 모여 토론하는 도서관이 있었지만, 13세기, 14세기 몽골 군대의 침략으로 바그다드는 함락되고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한다.
바그다드의 화가는 몽골 군대의 침략을 피해 탑 위로 도망가 살아남지만, 그곳에서 친구와 가족들이 죽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는 눈이 있어 잔인한 현실을 볼 수밖에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 자신의 눈을 찌르고, 화가들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세상이 잔인한데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은 죽은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빨강》을 통해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중동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한국과 유럽 사이에 있는 인도와 중동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책 제목 "내 이름은 빨강"의 은유적 메시지는 스포일러에 해당되므로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김대식 교수는 이 책을 세 번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조금씩 느낌이 달라진다고 한다.
김대식 교수는 여러 번 읽으면서 매번 새로운 것을 느끼는 책으로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을 추천한다. 킬리만자로 산에서 얼어 죽은 표범은 무엇을 찾으러 올라왔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 단편 소설은, 읽는 시기에 따라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이지만, 김대식 교수에게는 독일 학교에서 읽게 하는 책이라는 안 좋은 기억이 있다.
그레고르 잠자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평범한 청년이다. 어느 날 아침, 그는 눈을 떴을 때 자신의 외모가 끔찍한 벌레로 변한 것을 발견한다. 가족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고, 그는 집에서 숨어 살게 된다. 여동생이 약혼자를 집에 데려오겠다고 하자, 그는 더욱 불안해한다.
《변신》은 20세기를 암시하는 듯한 작품으로, 인간을 벌레로 취급하는 사회를 비판한다. 인간을 인간 이하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모를 기준으로 인간을 판단하는 사회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김대식 교수는 《변신》을 통해 자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말한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도 자아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늙어가면서 껍데기가 변해간다. 진정한 자아는 변하지 않는 내면일까, 아니면 계속 바뀌는 껍데기일까? 《변신》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며, 나를 대입해 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